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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 평장사공파

(4세조) 조선 세종 / 사헌부 지평 조계평 : 세종대왕과 공궤

by 구엽하늘 202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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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22권, 세종 30년 11월 21일 계묘 2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불당에서 경찬회를 베풀므로 각사의 도살과 행형을 금하도록 승정원에 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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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에 전지(傳旨)하여, 오는 12월 초하루에서 초9일까지 각사(各司)로 하여금 도살(屠殺)과 행형(行刑)을 금(禁)하게 하였으니, 불당(佛堂)에서 경찬회(慶讚會)를 베풀기 때문이었다. 또 가가(假家)를 불당(佛堂) 밖의 건천(乾川)에 짓기를 명하여 외승(外僧)의 공궤(供饋)하는 곳으로 삼게 하였다.


내불당의 완공을 기념하여, 사찰완공기념식인 경찬회가 거행되었다.

기쁜 날이니, 형벌의 집행을 금지하라고 어명이 내려졌다.

그리고 근처 냇가에 임시 건물을 지어, 방문한 승려를 대접하도록 하였다.


승정원에 전지 : 현재의 대통령비서실 격인 승정원에 지시를 내림

건천 : 물이 흐르지 않는 시내, 비가 오면 물이 흐르는 시내

외승 : 떠돌이 승려, 이 곳에 거처하지 않는 승려

공궤 :  음식을 나눠줌, 음식을 대접함


세종실록 122권, 세종 30년 11월 25일 정미 1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의정부 사인 박중손이 불당 경찬회에서 잡승의 공궤를 정지하기를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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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에서 사인(舍人) 박중손(朴仲孫)을 시켜, 불당 경찬회(佛堂慶讚會) 때에 잡승(雜僧)도 아울러 밥 먹이는 일을 정지하기를 아뢰어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승도(僧徒)를 공궤(供饋)함이 나의 덕(德)에 무슨 손해와 이익이 있겠는가. 비록 문소전(文昭殿)에 가깝다는 이유로써 말하나, 인가(人家)도 가까운 곳에 많이 있는데, 어찌 이 일에만 말하는가. 또 이처럼 비밀히 아뢰니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하겠다."

하매, 중손이 아뢰기를,

"당상(堂上)들의 뜻은, 대간(臺諫)에서 도당(都堂)041) 의 계청(啓請)을 듣고 잇달아 와서 번거롭게 간청(諫請)할 것을 염려한 까닭에, 비밀히 아뢴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대저 재(齋)를 베푸는 것은 승속(僧俗)042) 을 가리지 아니하고 모두 공궤하는 것이나, 지금은 속인(俗人)과 아울러 공궤할 수 없으니, 부처에게만 공양하고 그 중들에게는 재반(齋飯)을 주지 아니함이 옳을까. 저 잡승(雜僧)들이 비록 더럽히는 일이 있을지라도 스스로 그 허물을 당할 것이니, 공궤해 주는 자에게 무슨 화복(禍福)에 관계됨이 있겠느냐."

하였다.


의정부에서 의정부 소속의 실무를 맡고 있는 박중손을 통해, 세종대왕한테 청한다.

박중손 : "내불당에 속하지 않은, 허락받지 못한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멈춰주소서"

세종 : "절밥을 승려한테 주는 것인데, 뭐가 문제인것이냐, 중요한 일도 아닌데 이리 말하는가?"

박중손 : (내불당 세울 때 겪었잖아.) "장관들이 회의시간에 얘기하면, 다들 한마디씩 할까봐 저보고 전하라고 시켰어요."

세종 : "그냥 줘"


세종실록 122권, 세종 30년 11월 25일 정미 2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불당 경찬회 때 승려 공궤로 잡승을 금하지 말도록 대사헌 윤형에게 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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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 윤형(尹炯)을 불러 말하기를,

"불당 경찬회 때에 내가 외방의 중들을 아울러 공궤하고자 하니, 이달 28일에서 내달 11일까지 잡승(雜僧)을 금하지 말라."

하니, 이 아뢰기를,

"이는 경찬회에 관계됨이 없으니 정지하기를 청하옵니다. 만일 할 수 없다면 액수(額數)를 정하여 공궤함이 어떠하오리까."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의정부에서 이 때문에 와서 청하였으나, 내가 이미 윤허하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말하지 말고, 이 뜻을 동료(同僚)에게 전하라."

하였다.


세종 : (그래!! 또 귀찮아지면 힘들어지겠군.) "대사헌 윤형을 오라하라"

세종 : "경찬회에 방문하는 멀리서 온 승려들도 모두 허락하고, 대접하라"

윤형 : "몇 인분을 준비할까요?"

세종 : "아까 의정부에도 얘기했어. 시키는대로 해"

 


세종실록 122권, 세종 30년 11월 26일 무신 1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사간원 우헌남 김득례·사헌부 지평 조계팽이 불당 경찬회 때 잡승 공궤를 정지하기를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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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 우헌납(司諫院右獻納) 김득례(金得禮)와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조계팽(趙季砰)이 아뢰기를,

"이제 광흥창 승(廣興倉丞) 이의인(李依仁)의 척간(擲簡)을 궐(闕)한 공사(供辭)로 인하여 경찬회에 외방의 중도 아울러 공궤함을 알았습니다. 이 일이 경찬회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온데, 용잡(冗雜)한 중들로 하여금 궁성(宮城) 곁에 나아가 밥 먹게 하오면, 허비가 적지 아니합니다. 하물며, 불도(佛道)는 청정(淸淨)으로써 으뜸을 삼사오니, 저 밥 먹는 잡승은 모두 다 추하고 더러워서, 그 도(道)에도 옳지 못하오니, 정지하기를 청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누가 먼저 이 의논을 주창(主唱)하였느냐."

하매, 계팽(季砰)이 아뢰기를,

"본부(本府)에서 간원(諫院)을 통해서, 와서 아뢴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이는 반드시 의정부의 말을 듣고 곧 청한 것인데, 이의인(李依仁)으로 인하여 알았다고 하니, 이는 거짓이다. 물어도 말하는 것이 오히려 간사하거늘, 묻지도 아니하는데 스스로 먼저 말하였으니, 간사함이 더할 수 없다. 나의 신하가 어찌하여 이 같은데 이르렀는가. 내가 참으로 부끄럽다. 비록 유사(攸司)에 내리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그 실정을 알고야 말겠다."

하고, 급히 대사헌 윤형을 불러 말하기를,

"친구가 말한 바를 곧 남에게 누설하여 도리어 해롭게 함은 옳지 못하며, 친구가 내게 묻는데 사실대로 고하지 아니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그러나, 임금이 묻는 것을 친구를 위해서 말하지 아니함은 더욱 옳지 못하다. 병인년에 정창손(鄭昌孫)도 이 같은 일로 써 죄를 받았다. 지금 아뢴 바 외승(外僧)의 공양(供養)은, 이보다 먼저 알지 못하고 이의인을 통하여 비로소 알고서 말하였는가. 의정부에서 아뢴 말을 과연 듣지 못하고 말하였는가. 어제 내가 경에게 말한 바를 동료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하니, 이 아뢰기를,

"일찍이 가가(假家)를 많이 짓는다는 것을 듣고서 외승(外僧)을 공궤하는 줄을 알았습니다. 또 서리(書吏)가 와서 말하기를, ‘예조 판서가 의정부와 더불어 같이 의논하여 외승 공양을 정지하기를 청하였다. ’고 하기에, 의정부에서 와서 청한 것을 알았습니다. 마침 이날에 신 등이 일로써 피혐(避嫌)하였었는데, 명을 받고 직방(直房)에 와서 모였더니, 이내 또 따로 신을 부르시매, 동료들이 신에게 이르기를, ‘지금 이의인의 말로써 외승을 공양하는 일을 확실히 알았으니, 다행히 편(便)043) 이 있거든 정파(停罷)하기를 아뢰어 청하라.’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이미 알았으니 만약 편이 있으면 반드시 아뢰겠다. ’고 하고, 빈청(賓廳)에 이르니 과연 외승을 금하지 말라는 하교(下敎)가 있었습니다. 신이 명을 받고 가각고(架閣庫)에 물러나 앉아서 동료들을 맞아 상지(上旨)를 자세히 전하니, 동료들이 말하기를, ‘내일 다시 아뢰어 기어코 청을 얻어야 된다. ’고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큰 일을 이미 청하여 얻지 못했는데, 이 같은 지엽(枝葉)의 일을 어찌 번거롭게 다시 청하여 성상(聖上)의 마음만 동하게 할 것인가.’ 하였으나, 모두 말하기를, ‘중의(衆議)가 이와 같으니 중지할 수 없다. ’고 하였습니다. 신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회포가 있으면 반드시 아뢰는 것은 간신(諫臣)의 일인데, 하물며, 사헌부는 비록 지평(持平)의 말이라도 억지로 말릴 수 없다고 생각된 까닭에, 신이 능히 말리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또 조계팽에게 묻기를,

"외승 공양하는 일을 어느 곳에서 듣고 와서 아뢰느냐. 의정부에서 아뢴 것을 또 어디서 들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가가를 많이 짓는다는 것은 본디 들었사오나, 이의인을 통하여 외승 공양하는 일을 알았고, 의정부에서 아뢴 것은 일찍이 들어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에 집의(執義) 노호(盧皓), 장령(掌令) 김순(金淳)·김안생(金安生), 지평 허조(許稠) 등을 불러 계팽에게 묻던 일로써 물으니, 노호 등이 아뢰기를,

"외승 공양은 이의인을 통하여 알았사오나 계청(啓請)할 의논은 없었습니다. 어제에 이르러 윤형이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신 등이 계달하기를 부탁하였더니, 윤형 가각고에 물러나 있다가 상지(上旨)를 선포하여 잡승(雜僧)을 잡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신 등이 윤형에게 이르기를, ‘청을 얻기 어려울 듯하나, 다시 의논하자.’ 하고, 오늘에야 지평(持平)으로 하여금 와서 청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윤형·계팽·노호 등의 말한 바가 각각 다르니, 심히 올바르지 못하였다. 반드시 끝까지 밝히고야 말 것이니, 너희들은 대관(臺官)임을 혐의하지 말고 곡직(曲直)을 캐물어서 아뢰라. 또 필시(必是) 의정부의 의논을 들은 뒤에 와서 청한 것인데, 이의인의 말을 듣고 비로소 알았다고 하니, 의인은 어떻게 말하였기에 그러한 것을 알게 하였는가. 지금 대사헌의 말을 보면 계청(啓請)의 의논이 본디 있었는데, 어찌 의인을 통하여 알았다고 하는가. 대사헌과 대장(臺長)이 별처(別處)에서 묻게 하라."

하니, 노호 등이 아뢰기를,

"처음에 윤형과 더불어 의논하지 아니하였고, 이의인에게 물어 보고 뒤에서야 알았습니다. 어제 서리(書吏)가 와서, ‘의정부에서 불사(佛事)를 정지하기를 아뢰었다. ’고 말하였으나, 그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고 신 등이 허황한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본래 들은 바가 있다면 어찌 감히 숨기오리까."

하였다. 또 윤형에게 묻기를,

"외승의 공양을 어떻게 알았는가."

하니, 이 아뢰기를,

"17일, 18일 사이에 가가를 짓는다는 것을 듣고서 곧 외승 공궤를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였다. 또 묻기를,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는가."

하니, 아뢰기를,

"좌중(座中)에서 듣고 속으로 생각하기를, 지평위(持平位)에게 들은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였다. 또 묻기를,

"어디로부터 의정부의 의논을 들었는가."

하니, 아뢰기를,

"어제 서리가 와서 쪽지[片簡]를 내어 보이고 이내 말하기를, ‘예조 판서가 의정부에 가서 외승 공양을 정지하기를, 청할 일을 의논한다. ’고 하여, 이로써 알았습니다."

하였다. 승지 조서안이 이 말을 가지고 차례차례 힐문(詰問)하니, 노호 등이 대답하기를,

"이 같은 것 등의 말은 일찍이 듣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경찬회를 크게 준비하는 것과 단확(丹艧)이 제도에 지나치는 까닭으로, 그것을 정지하기를 청할 것을 서로 의논한 것뿐입니다."

하고, 계팽 등은 말하기를,

"신 등이 만약 가가(假家)의 일을 말하였다면 대사헌도 들었을 것인데, 연좌(連座)한 장령(掌令)으로서 듣지 못하였겠습니까. 진실로 이 말은 없었습니다."

하였다. 또 이의인에게 묻기를,

"외승 공양의 일을 사헌부에 말하였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의정부의 말을 듣고 와서 청한 것인데, 애초에 바른 대로 말하지 아니하고 서로 변명하기를 다투어, 마침내 큰 일을 이루었으니, 형세가 그만두기 어렵다. 너희들은 되풀이해 캐물어서 정상(情狀)을 알아가지고 아뢰라."

하매, 도승지 이사철(李思哲) 등이 캐물었으나, 대장(臺長)들이 처음과 같이 대답하고 다른 말이 없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들이 이처럼 작은 일을 당초에 숨겼던 까닭으로, 억지로 변명함이 이에 이르니, 심히 미혹(迷惑)하여, 그 형세가 반드시 실정을 다 말하지 아니할 것이나, 유사(攸司)에 내리지 아니하고 실정을 얻고자 하니, 대사헌과 대장을 되풀이해서 캐물으라."

하니, 이에 캐묻기를 마지 아니하여 밤이 이미 삼고(三鼓)에 이르렀다. 이튿날 아침에 또 윤형 등에게 묻고, 또 서리(書吏) 이예공(李禮恭)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의정부에서 불사(佛事) 정지하기를 청하는 일을 쪽지에 써서 대사헌에게 올리니, 별로 입으로 답하는 말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또 이의인이 말한 바를 여러 대장(臺長)에게 힐문하니, 그 말을 조금 변하여 아뢰기를,

"신 등이 물러가서 밤새워 생각하였사오나, 본부(本府)에서 일찍이 불당(佛堂)의 일을 여러 번 서로 의논하였었는데, 그때에 대사헌이 가가(假家)의 말을 내었는지, 신 등이 듣고도 잊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명하여 의정 하연·황보인, 찬성 박종우·김종서, 참찬 정갑손 등을 불러 이르기를,

"대사헌과 대장의 말이 서로 어긋나니 어떻게 처치할까."

하니, 황보인 종우가 아뢰기를,

"곡직(曲直)이 이미 명백하면 진실로 좌천(左遷)시킴이 마땅하오나, 곡직을 분변하지 아니하고 좌천만 시키면, 외인(外人)이 어찌 그 사실을 알겠습니까. 형조(刑曹)에 내려서 분변해 가린 뒤에 성상께서 재결하심이 마땅하옵니다."

하고, 하연·종서·갑손 등은 아뢰기를,

"불가하옵니다. 저들이 비록 기망(欺罔)의 죄가 있을지라도 간쟁(諫諍)의 마음에서 나왔으니, 너그럽게 용서함이 의리에 마땅하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노여워하는 바가 없으니 마땅히 대신의 의논에 좇을 것이나, 대신들의 의논이 한결같지 아니함은 무엇 때문인가. 저들의 말이 서로 어긋나서, 하나는 간신(姦臣)이 되고, 하나는 충신(忠臣)이 되니, 이제 만약 국문(鞫問)하지 아니하면 충신과 간신의 분변이 없으며, 또, 이미 서로 힐난(詰難)하여 심지(心志)가 불화(不和)한데 다시 동료들과 더불어 어찌 편안할 것인가. 하물며, 임금을 속이는 마음은 키울 수 없으니, 마땅히 귀일(歸一)하게 아뢰라."

하니, 하연·종서·갑손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은 저들이 죄가 없다고 함이 아니옵니다. 저들이 성상(聖上)의 힐문(詰問)으로 인하여 황급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공교롭게 거짓말을 꾸몄사오니, 죄가 진실로 큽니다. 그러하오나, 그 마음은 임금을 간(諫)하는 데에서 나왔고, 처음부터 기망(欺罔)한 것은 아닙니다. 청하옵건대, 모름지기 너그럽게 용서하소서."

하고, 갑손이 또 아뢰기를,

"대저 임금이 이미 기망한 것을 알면 그 죄를 다스림이 마땅하오나, 이는 언사(言事)로 인하여 말한 것이오니, 죄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대신의 의논을 따른다고 말하였으니, 어찌 감히 속이리오. 마땅히 중의(衆議)에 좇아 죄주지 않을 것이다. 또 누설(漏洩)한 일은, 내가 의심하기를 처음에 승지(承旨)와 사인(舍人)들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여겨, 그 나온 데를 알고자 할 뿐이다. 지금 일의 근본을 이미 버려두고 묻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지엽(枝葉)을 논하리요. 내가 모두 묻지 아니할 것이나, 저들의 올바르지 못한 죄는 버려둘 수 없다. 이 일은 내 몸에도 누(累)가 있으니, 내가 능히 그 사이에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다."

하였다. 하연 등이 환관(宦官) 김득상(金得祥)에게 이르기를,

"신 등이 아뢴 것은, 하나는 저들이 비록 간사하나 언책(言責)을 다하고자 함이었으니, 그 뜻이 가상할 만하여 용서를 받음이 마땅하며, 하나는 지금 언사(言事)로써 죄를 받음으로 인하여 인신(人臣)이 말하는 것을 꺼리면, 언로(言路)가 막힐 것입니다. 신 등의 뜻은 이것뿐이온데, 감히 저들을 돕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지금 성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부(可否)를 가릴 수 없다. ’고 하시니, 신 등은 황공무지로소이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 등이 비록 말하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경 등의 뜻을 어찌 알지 못하랴. 내가 이단(異端)044) 의 일로 인하여 언관(言官)을 꾸짖기 때문에, 대신들이 마음속으로 그르게 여겨, 옳지 못함을 힘써 말하니, 저들이 임금을 속이는 일이 있으면, 대신들은 마땅히 놀라서 죄를 주려고 할 것인데, 이제 경들은 그르다고 아니하니, 아랫사람이 저들의 간사함을 어찌 알 것인가. 저들도 역시 어찌 그 간사함을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인가. 지난번 병자년에도 역시 이 같은 일이 있었는데, 내가 마침내 죄주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지금 이 같은 데 이르렀으니, 어찌 버려두고 다스리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하매, 하연 등이 부복(俯伏)하고 물러갔다. 또 김득상에게 명하여 대장(臺長)과 서리(書吏)의 말한 바를 물으매, 조서안 등이 자세히 말한 바를 아뢰니, 곧 윤형·노호 등에게 모두 벼슬에 나아가기를 명하였다.


말이 어렵고 길어, 내 능력으로는 해석이 안된다.

이해한 것만 요약하자면...

 

세종 : "(괘씸한, 또 귀찮게 하네) 내가 이미 사헌부를 통해 내 뜻을 다 알렸거든, (의정부에서 또 나를 괴롭히려 너희를 보냈구나.) 이번 일을 어떻게 알았느냐 (내 뜻을 굽힐 맘이 없으니, 네가 하는 말 중에 거짓이 있으면 그걸 추궁하여 이 일을 해결하리라)"

계평 할아버지 : "잘 못 했습니다."

정갑손 : "일하느라 그런건데..."

세종 : "알았다. 뭐라 안할께. (대신 공궤하는것도 뭐라고 하지마)"